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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부정공>유헌공휘찬영가장(幽軒公諱贊永家狀)
幽軒公諱贊永家狀 府君諱贊永字孝元號幽軒以高麗門下侍中諱璋爲上祖三傳諱元吉號農隱與圃牧諸賢定策勳一等封玉川君子孫因籍焉享武夷院是生諱瑜號虔谷以麗朝副正不膺我 朝徵命入杜門洞罔僕自靖享謙川祠其後若相好公之篤倫三灘公之潛德至有咏歸公及其子進士公之繼起焉則世德淵源可謂深矣於府君六世以上也曾祖諱觀燁祖諱鶴奎考諱鍾振號泉西十歲喪母哀號如老成妣淸州楊氏斗榮女早歿無育繼妣全義李氏玄起女府君以 高宗壬午三月二十三日生天性溫和言色無遽與兄甚友飢飽寒暖視同一己及長析箸一遵家敎矣居無何天禍吾家我伯考府君遺二孤早歿時王考大碩人在堂矣以無幹家之故依舊合爨固其宜也其事親之節撫孤之義至有宗族稱之第俟年長其成婚持產之道皆厚於姪而薄於己非但府君天性爲然也惟母夫人尤賢也己是以同居二十餘年家無喧言王考大碩人日益安之從昆季亦甚親愛視如同胞又誠於安厝遷移頻頻而不以介子而委之獨自周旋盖由本性根天甞以早年失學爲恨敎小子甚勤或招延師長或果衣糧從師而敎之府君心力於是乎殫矣己亥春三月偶有迷昏之症日甚一日至八月十五日下世壽七十八墓金谷原從先兆也配陽川許氏圭女純一無僞李尊舊敬君子撫孤姪稱于鄉里小子輩賴以食息莫非我母夫人之餘蔭也先府君一年十一月二十一日生又先六年癸巳五月五日卒壽七十三墓合窆有三南一女長即東貴也次東俊東烈梁貞鎬妻也曰光勳廬秉五妻其副室子女也孫光國光宅德全州李信宰淸州韓在澤慶州金基萬妻長房出銀翼彩翼二房出宅翼三房出大翼四房出外孫梁海英梁明洙廬芳源也餘不盡錄鳴呼小子無似志不率氣既負平日責望之意故所謂鉛槧投之度外漂泊江湖受若風霜少慰至冤矣歲不我與奄失怙恃只哀痛罔極而己耳曾子曰孝有不及其斯謂歟畧綴蕪辭以俟高明採擇焉 不肖子 東貴 謹狀 유헌공휘찬영가장(幽軒公諱贊永家狀) 부군의 휘는 찬영(贊永)이요 자는 효원(孝元)이며 호는 유헌이고 옥천조씨인데 고려국 문하시중 휘 장(璋)을 상조로 삼전하여 휘 원길(元吉)의 호는 농은(農隱)인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제현으로 더불어 정책훈 일등으로 옥천군에 봉하니 자손이 이에 관향을 삼았고 무이원에 배향하였으며 생휘 유(瑜)의 호는 건곡(虔谷)인데 고려국 부정 벼슬을 지냈으며 이씨 조정의 부름을 받지 아니고 두문동에 들어가 신분을 숨기고 스스로 구주에게 충성을 바쳤고 겸천사에 배향하였다. 그 후에 상호공(相好公)의 두텁게 행한 천륜과 삼탄공(三灘公)의 잠긴 덕이며 영귀당공 및 그 아들 진사공(進士公)이 일어났으니 세덕 연원이 가히 깊으다 이르겠고 이상은 부군의 六세조 이상이다. 증조의 휘는 관엽(觀燁)이요, 조의 휘는 학규(鶴奎)며 고의 휘는 종진(鍾振)인데 호는 천서(泉西)로 十세에 모친을 잃고 노성한 사람같이 슬피 울부짖으며 집상하니 보는 사람 장노들이 큰 소리로 칭찬하였으며 비(妣) 청주양씨(清州楊氏) 두영(斗榮)의 따님은 일찍 돌아가 생산이 없고 계비(繼妣)는 전의이씨(全義李氏) 현기(玄起)의 따님이시다 부군이 고종(高宗) 임오(壬午 一八八二)년 三월 二十三일에 출생하였는데 천성이 온화하여 몹쓸말과 당황한 빛이 없으며 백형으로 더불어 심히 우애하여 굶주리고 배부르며 춥고 더운 것을 함께 하더니 장성하여 분가할때 한결같이 가훈을 따랐다. 그 뒤 우리 집에 천화가 미쳐 백고 부군이 두 아들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뜨자 왕고대석인이 집에 계셨지만 가정을 꾸려갈 사람이 없어 살림을 다시 합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버이 섬긴 도리와 고아를 무육한 의리는 종족과 향당이 칭송하였고 나이 장성하기를 기다려 그 성혼할때 기출보다 후하게 하고 분재할때 조카에게 후하게 하며 자기에게 박하게 하니 다만 부군의 천성이 그러한 때문만이 아니라 오직 모부인이 더 어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로부터 二十년을 동거하며 집에 사이 말이 없으니 왕고께서 날로 더욱 편안하시고 종 형제가 심히 친애하여 동포같이 보며 또 선영에 정성이 많아 자주 이장하였지만 종가에 맡기지 않고 홀로 스스로 주선한 것은 출천(출천)한 효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찍 배우지 못한 한이 있어 소자를 심히 부지런하게 가르치시며 혹 스승을 맞아 들이고 혹 식량을 싸서 스승을 딸려 보내니 부군의 마음과 힘을 이로서 다하였다. 기해(己亥 一九五九)년 춘 三월에 우연히 노혼한 증세가 있어 날로 심하여 八월 十五일에 향년 七十八세로 세상을 뜨니 묘소는 봉암 아래등 선산하에 있고 부인은 양천허씨(陽川許氏) 규(圭)의 따님으로 성품이 전일하여 거짓이 없고 시부모께 효도하며 남편을 공경하고 외로운 조카들을 무육하니 향리에서 칭송하였으며 소자들의 무리가 평소에 안식한 것이 우리 모부인의 여음이 아닌것이 없다. 부군보다 一년 먼저 一八八一년 十一월 二十一일에 출생하여 六년전 계사(癸巳 一九五三)년 五월 五일에 춘추 七十三세로 별세하시니 묘소는 강정등에 있다. 아들은 동귀(東貴), 동준(東俊), 동렬(東烈), 광훈(光勳)이요 딸은 양정호(梁貞鎬), 노병오(盧秉五) 처며 손자는 광국(光國), 광택(光宅), 광덕(光德), 전주(全州) 이신재(李信宰) 청주(清州) 한재택(韓在澤) 경주(慶州) 金基萬 처는 큰 아들 소생이요, 은익(銀翼), 채익(彩翼)은 둘째아들 소생이며 택익(宅翼)은 세째아들 소생이요 대익(大翼)은 네째아들 소생이며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아니한다. 아! 슬프다 소자가 불초하여 뜻이 기질을 따르지 못하고 이미 평일에 기망하신 뜻을 저버리고 이른바 문방사우를 팽개치고 강호로 돌아다니며 고락을 맛보며 적이 나의 울분을 위로하다 보니 세월이 나를 기다리지 않고 문득 부모가 세상을 버리시니 다만 애통망극할 따름이다. 「증자(曾子)」 말씀에 「효도가 미치지 못한 것이 있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말함일진저 대략 거친말을 엮어서 후일 고명의 채택을 기다림. 불초자(不肖者) 동귀(東貴)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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